[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11) 근본주의를 넘어 다문화 사회로(上)
  • 관리자 
  •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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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경향뉴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rtid'=200906211750035&code'=210000>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11) 근본주의를 넘어 다문화 사회로(上)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ㆍ다문화 사회는 거부할 수 없는 ‘현대적 삶의 조건’

     

    박명림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지난번에 주신 글은 잘 보았습니다. 저는 ‘학벌 없는 사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교육운동에 참여해 왔고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만, 지난번 글을 쓸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말미암아 정작 교육에 대해 할 말을 다 못했는데, 선생님께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오늘 주제는 ‘근본주의를 넘어 다문화사회로’인데, 우리 대화가 마지막에 가까워지면서 저는 이제 험한 산은 다 넘은 줄 알았더니 이 문제야말로 쉽게 넘을 수 없는 정말 험하고 높은 산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군말 없이 먼저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사회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현황을 살펴보면, 2008년 현재 외국인의 수는 144만명 정도가 됩니다. 이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는 70만명가량인데 그중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약 20만명 정도라는군요. 다른 한편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2008년 새로 결혼한 사람들 가운데 11%가 외국인과의 결혼이었습니다. 농촌 지역의 경우는 무려 41%가 외국인과의 결혼이랍니다. 국제결혼을 통해 형성된 다문화가정의 자녀 수 역시 계속 증가하는 추세여서 작년 기준으로 5만8000명이었으나, 2010년에는 10만명이 넘을 것이라 하고 2020년이 되면 16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통계 전문가가 아니어서 이런 예상치가 정확히 어떻게 계산되어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세세한 숫자에서 조금씩 예상이 빗나갈 수 있다 하더라도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숫자가 급속히 늘어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앞으로도 이 추세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급속한 외국인 거주자 증가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느냐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장래를 위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절박한 과제가 됐다. 바람직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두 가지 대원칙은 외국인을 한갓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과 일단 받아들인 외국인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의 거친 손.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세계 최저수준의 한국 출산율 외국인 거주자 증가는 필연적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국제결혼을 통한 이민자 외에도 한국 사회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가운데 일부를 이루는 사람들이 학생들입니다. 학위취득이나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한국의 전문대학 이상 고등교육기관에 적을 두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숫자는 2004년 1만6832명이었던 것이 2007년에는 4만9270명으로 급증하는 추세를 보여주는데, 이 숫자 역시 당분간 줄어들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당장 저의 경우만 하더라도 다음 학기에는 베트남에서 오는 유학생을 박사과정에서 제자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런 일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비록 상대적으로 단기 체류자들이기는 하지만 이들 역시 한국 사회에 거주하는 주민의 일부임에는 틀림이 없고, 한국 사회의 필요에 따라서 이들은 언제라도 장기체류자나 이주민으로 바뀔 수 있는 사람들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숫자가 더 늘어나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근거를 댈 수 있겠지만, 저는 다른 무엇보다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의 출산율을 고려하면, 그것이 거의 필연적인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의 비인간적인 교육환경과 점점 더 열악해지는 노동조건, 그리고 맹목적인 자본숭배 아래서 전반적으로 반생명적인 문화는 점점 더 출산 자체를 축복받지 못하는 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여성이 임신하면 축하하기보다 어떻게 낳고 키우고 교육시킬지 걱정부터 먼저 해야 하는 사회에서 출산율이 늘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찾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입니다. 물론 그런 사회를 바꾸어야 하겠지만 하루 아침에 지옥이 천당이 될 수도 없는 일이니 당분간 우리는 출산율 저하를 우리가 스스로 사회를 지옥으로 만든 죗값으로 알고 감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출산율 감소는 노동인구의 감소를 부르는데, 사회가 완전히 붕괴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디선가 모자란 노동력을 채워넣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니, 외국으로부터 이주민을 받아들이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급속한 외국인 거주자의 증가는 한국 사회에서 전에 없던 변화이며, 그 변화가 이전에 없던 많은 문제들을 낳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하여 이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 가느냐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장래를 위해 더는 무관심하게 외면할 수 없는 절박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이 문제에 관해 가능한 한 감정적 대응이나 관념적인 당위론을 배제하고 현실에 입각하여 우리가 추구할 수 있고 추구해야 할 대응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갈등·충돌 피할 수 없는 문제 ‘민족’에 갇혀 배척해선 안돼

     

    외국인의 급속한 증가와 함께 늘어나는 외국인들의 범죄행위나 인종 간의 갈등, 그리고 문화적 차이가 낳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우려하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염려를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더불어 살게 될 때 충돌과 갈등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부 한국인들이 다문화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그 부작용을 비판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되었다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폭로하고 말 것이 아니라 해결하려 한다면, 결과적인 부작용을 비판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태를 전체에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문화사회의 부작용 때문이든, 단일민족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외국인 이주민들을 무작정 배척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처럼 세계화된 시대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고국을 떠나 남의 나라에 가서 살 수 있는 것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 역시 우리나라에 와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원하면 받아들이고 원치 않으면 거부할 수 있는 가변적 상황이 아니라, 우리가 임의로 거부할 수 없는 현대적 삶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함석헌이 수십 년 전에 정확히 지적했듯이 우리 시대는 더 이상 민족국가가 개인의 삶의 최종적 울타리가 아니게 된 시대입니다. 이제 삶의 지평은 국가에서 세계로 넓혀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 타인과 만나고, 노동하고 사업을 펼치며, 자기를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 현대 사회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이미 수백만의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데, 이제 한국 사회 내에 수백만의 외국인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해서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용납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은 억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대적인 삶의 조건 위에서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노동력 조달·인신매매 아닌 참된 만남의 주체로 대접을

     

    저는 이를 위해 두 가지 원칙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외국인을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한 사회가 모든 타자를 무차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 타자를 위해 의로운 일도 아니고 자기를 위해 지혜로운 일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 특정 계층의 남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배필을 찾기 어렵게 된 것은 한국 사회의 병리적 현상으로서 우리가 우리 내부에서 극복하고 해결해야만 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제를 일종의 대규모 국제결혼을 통해 해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국사회에서 기업적으로 이루어져 온 국제결혼이 과연 용납될 수 있는 일인지 되물어야 합니다. 다른 예를 들자면, 아직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명박 정부가 4대 강 정비라는 이름으로 운하 사업을 시작한다면, 수십 조 원이 들어가는 토목공사에 참여하는 건설 회사들은 값싼 노동력을 조달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수입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다문화 사회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분별없이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칸트는 어떤 경우에도 인간을 한갓 수단으로 보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고 가르쳤는데, 저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외국인들을 받아들일 때 지켜야 할 첫째가는 원칙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외국인을 한갓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런 나라는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역사의 법칙입니다.

     

    둘째로 일단 받아들인 이주민은 참된 만남의 주체로서 대접해야 하며,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중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장기체류든 단기체류든, 이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인종과 직업을 막론하고 평등한 인간으로서 대접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잘못은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민에 대한 인권침해를 여기서 세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저는 특히 어린 아이들의 문제만 언급하려 합니다. 70만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서로 결혼하여 아이를 낳더라도, 그렇게 태어난 새 생명은 우리 사회에서 의료와 육아 그리고 교육 모든 면에서 아무런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정부가 그 아이들에 대한 통계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지금의 상황입니다. 그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쓰고 한국인으로 자라지만 한국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된 유령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이와 사정은 다르지만 대다수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경우에도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차별의 대상이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학교에서는 학습부진아라고 차별받습니다. 그리고 남자 아이들의 경우에는 혼혈아라 해서 군대에도 가지 못합니다. 이들에 대한 차별을 멈추고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온 사회가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증오의 지옥불이 우리 사회를 집어삼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문제 풀려면 인간적 사회 돼야 그래서 참된 공화국 더욱 절실

     

    언제나 타자는 자기의 거울입니다. 오늘 이주민들과의 관계에서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들 자신이 보다 성숙해져야 하며, 우리 사회가 보다 인간적인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 힘을 쏟아야 할 정부가 반대자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급기야 남의 이메일까지 뒤지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입니다.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나라에서 시민으로 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니, 저 또한 원치 않게 고국을 등지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더 늦기 전에 이 땅에 참된 공화국을 세우는 것이 절실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마처럼 우울한 말,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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