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11)근본주의를 넘어 다문화 사회로(下)
  • 관리자 
  •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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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경향뉴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6281743075&code'=210000>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11)근본주의를 넘어 다문화 사회로(下)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다문화 사회로 가려면 ‘사회적 내부통합’ 선결돼야

     

    김상봉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사실 지난 번에 교육문제에 대해 편지를 쓰면서 선생님께서 이 분야의 전문가이자 활발한 저술과 실천 활동을 해오고 계셔서 주저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대담 준거가 공화국이고, 또 한국교육이 워낙 문제가 많다보니 비슷한 생각을 폭넓게 공유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반성이 필요한 대학교사라는 공통점도 작용하였던 것 같고요. 사실 한국에서 교육문제는 공동체 성원 누구나 이대로는 안된다고 느끼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우리 주변에서 많은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우리와 그들’이라는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작동해 이주민들을 쫓아내거나 ‘우리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사진은 불법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에 항의해 집회를 여는 외국인 노동자들(왼쪽), 그리고 한국의 차례상 차리기를 배우는 다문화가정의 며느리들의 모습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오늘의 대담 주제는 ‘근본주의를 넘어 다문화사회로’인데 말씀하신 대로 이 문제 역시 공화국과 연결시켜 논의하기에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점들에 대해, 진단과 대안을 포함해 저 역시 모두 동의하고요. 다만 한 가지 억울한(?) 점은 있습니다. 제가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선생님께서 인문학을 전공하셔서 그동안의 대담처럼 제가 이런저런 통계에 바탕해 말씀드리려고 준비해두었던 자료를 하나도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선생님께서 먼저 상세한 통계에 바탕해 말씀을 해주셔서요.

     

    경제선진국·지리적 요충지 한국‘들어오는 세계화’ 단계로 진입

     

    저희 대담의 초반에 제가 ‘공준 없는 공동체’로서 한국사회의 본질을 언급하면서 공준 부재를 대체한 주요 현상의 하나로 사회의 근본화·근본주의를 말씀드렸는데 저는 그때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근본화·근본주의의 문제는 생래적이거나 원초적인 단위로 돌아가 인간과 사회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와 정향으로서 더 넓고 큰 정체성·단위·연대에 대한 사유를 차단합니다. 따라서 공통점보다는 구별짓기·차별을 강조하는 것도 근본주의의 기본 속성이고요. 근본주의가 인종, 종족, 종교, 지역, 종파, 언어의 계선을 따라 형성·강화되는 소이는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원성을 넘을 때 그것은 자주 공준 또는 공동가치 창출에 장애를 초래하거나 심각한 내부 충돌 요소로 작용하지요.

     

    이 문제와 관련해 한국사회는 지금 객관적으로 갑작스레 다문화 사회로 가지 않으면 안될 사회적 조건 및 흐름과 그것에 대한 내면적 저항 및 거부가 공존하는 기묘한 이중현상, 충돌상황에 놓여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랜 ‘단일 민족사회’, ‘역사적 국가’의 전통에 대한 신화적·현실적 관념이 이 객관적 현실에 대한 불편한 대면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모든 면에서 압축발전을 통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노정해온 현대 한국사회이지만 장구한 단일 정치공동체 역사에 비하면 최근의 급격하고도 불가피한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은 그 속도와 정도 면에서 너무도 급작스러운 압축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한국의 사회적·문화적 변동 요소 중 양극화와 함께 이보다 더 거시적·근본적인 것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급격한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에는 몇 가지 큰 흐름과 요인이 존재합니다. 먼저 지역통합과 세계화의 흐름입니다. 세계화와 지역통합으로 인해 한국이 국경을 넘는 이동의 산물인 다문화 사회로 가는 것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특히 한국으로부터 ‘나아가는 세계화’(outbound globalization)의 단계를 지나자 이제 한국으로 ‘들어오는 세계화’(inbound globalization) 단계를 맞고 있습니다. 여기에선 내부문제가 중요합니다. 말씀하신 출산율과 결혼문제, 농촌문제를 포함해 사회의 양극화 및 붕괴가 이러한 ‘들어오는 세계화’ 수요를 더욱 촉진하고 있지요. 게다가 한국의 사회·경제적 선진국 진입과 함께 재편되는 지역적 노동분업구조 역시 동남아, 서남아, 중국, 만주, 북한을 포함한 인근 국가와 지역으로부터의 한국으로의 하층 편입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사회계층의 국제적·지역적 분업구조와 재편현상의 산물인 것이지요.

     

    외국인 노동자·탈북자 하층 편입…우리 안의 양극화 해소 급선무

     

    게다가 한국은 대륙과 해양,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특별한 교량의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오랫동안 동쪽과 대륙 방면이 꽉 막혀 있다가 다시 그곳이 열리면서 사통팔달의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것은 교량과 가교로서의 한국의 지리적·지문화적(geo-cultural) 위치로부터 비롯된 바 아주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 다문화사회의 도래는 외부적 충격 또는 이물질화(異物質化)라거나 단기적 변화의 산물로 보기보다는 우리의 지리적 위치 및 거시적 사회변화에 비추어 오히려 더 발전적이며 바람직한 요소로서 해석하고 대면해야 할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는 내부 변화에 바탕한 적극적 수용을 통한 긍정요소로의 전변이 어느 정도나 가능하겠냐는 것이지요.

     

    제 생각에 이미 접어든 다문화 사회를 잘 수용하고 적응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내부 문제의 극복이라고 봅니다. 이들 비국민을 동등한 국민으로, 시민으로, 인간으로 대우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 내부의 정신적·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선결요건입니다. 동일한 정체성을 갖는 국민조차 상층과 하층, 도시와 농촌, 엘리트와 대중, 일등 국민과 이등 국민, 지배와 배제, 주류와 비주류,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후자에 대해 우리 내면의 인간적 구별짓기와 차별이 지속되는 한, 이미 우리 사회의 객관적 일부로 자리잡은 다문화가정과 다문화인이 우리 내면의 정신세계 속에서 같은 국민·시민·인간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사회적 양극화가 빠르게 갈라놓는 우리들 정신과 영혼의 내면적 양극화를 보며 저는 다문화가정과 다문화인들이 한국사회에 내면적·정신적으로 통합되지 못할 때 미래에 우리가 어떤 모습의 사회를 갖게 될지, 또 어떤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지 두렵습니다. 다문화사회의 빈발하는 갈등과 저항이 두 사회, 두 문화, 두 정체성, 두 세계의 평행화로부터 연유하는 최근의 세계적 현상을 볼 때, 그때에도 과연 한국 사회가 자발적 동의에 기초한 하나의 공화국으로서 외양과 내면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두 국민, 두 사회, 두 조직, 두 인식, 두 문화로 존재하며 한국 사회는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사회통합을 위한 국가의 사회경제정책 및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한 기존 ‘국민들’의 의식혁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세계화 시대 누구나 이민자·소수자…단일문화·다문화 분리 넘어서야

     

    기실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단기 체류자, 이민자에 대한 그동안의 한국사회의 인식과 처우는 우리의 문명성과 국격, 집합적 인간성을 엄중히 묻는 수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빈발하는 숱한 부당대우와 인간적 억압·노동착취, 기업화·인신 거래화·씨받이화한 일부 국제결혼, 교육적·문화적·언어적·정책적 통합 장치의 결여,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화… 등을 보면 일부 국가와 지역에서 한국의 집합적 차별에 항의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지요.

     

    저는 전공 상 자주 여러 나라를 다니며 한국과 동아시아문제에 대해 발표나 토론을 하는 편입니다만, 일부 근방 지역과 국가의 국민들이 한국에서, 또는 한국민들로부터 당한 대우 및 그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최소한의 문명과 양심,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 사회인지조차 돌아보게 만들 지경이었습니다. 옌볜동포와 탈북자들, 그나마 옛 고국이라고 찾아온 그들 소수자에게 우리가 보여주고 있는 태도와 자세를 보면 저들이 느낄 분노와 저항의 마음은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잘 사는 나라에서 온 국민들에 대한 인식과 대우는 또 정반대이지요. 외려 아무 자격 없는 사람에게조차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지불하면서 영어를 배우려 안간힘을 쓰는 우리네 모습과 시민의식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 한국인들의 물질주의 및 그에 바탕한 인간차별은 내부와 다문화는 물론 아예 국경을 넘나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 처녀와 결혼하세요”와 같은 지독한 인종차별적, 성차별적인 플래카드가 이토록 오랫동안 민주국가의 수도를 포함해 도시와 농촌의 대로 곳곳에 공개적으로 걸려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부끄럽고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들 비국민을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서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제는 법률, 그중에서도 특히 헌법을 바꾸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헌법의 ‘모든 국민은’에 관한 수많은 조항들은, 특히 권리조항들은 이제 ‘누구나’, ‘모든 인간은’, ‘모든 시민은’이란 주어로 바뀌어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진민주국가의 많은 헌법들은 이러한 정신을 반영해 벌써 국민권리가 아닌 인간권리 장전으로서의 헌법기능을 상정하고 있지요. 우리가 참된 공화국을 구성하려 한다면 ‘국민’ 이전에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동등하면서도 보편적으로 공화국 근본법으로서의 헌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문화 하나의 공동체로 수용하는 국민 의식혁명과 헌법개정 필요

     

    모든 인간은 사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영원한 이민자이고 소수자이며 비주류입니다. 근대로의 진입 이후의 고난으로 인해 한국민들 현재 인구의 11%가 해외에 거주할 만큼 이미 글로벌 소수자, 비주류, 이민자의 역사를 가장 대표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유태인에 비견하여 이른바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라고 불리는 것이지요. 세계의 다문화 사회 진입을 통한 혜택을 크게 받은 한국민들이 내부에서 다문화주의를 배척하는 것이야말로 이중적 이기성의 발로로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정주 관념과 관행, 단일 정체성이 크게 약해진 21세기 들어 ‘만인의 소수자화’ ‘이민자화’는 더욱 더 그러하지요. 누구도 이 세계화와 디지털 시대에 영토적·공간적 정주를 통한 우위성과 차별을 주장하고 강요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한 사람 역시 이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세계화 시대의 모든 인간은 삶을 마칠 때까지 필연적으로 여러 차례 소수자의 위치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따라서 개인이든 집단이든 우리가 다수자, 주류, 순혈자, 정통, 정주자의 관점에서 소수자, 혼성자, 이주자, 비주류를 차별하고 공격한다면 언젠가는 우리 자신이 차별받고 공격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다문화 자체가 인종차별적, 문화차별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표현임을 고려하여 이제 우린 단일문화와 다문화의 분리 자체를 넘어서야 합니다. 인간들 사이의 어떤 차별과 격차도 인간으로서의 공통점을 초월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단일성, 통일성, 순수성보다는 다원성, 혼성성, 복합성이 정체성의 확장을 통해 오히려 사회통합에 더 낫다는 점을 우리 모두 이제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존의 협애한 종족, 문화 정체성 확인과 고착은 자기 위축과 축소로 연결되므로, 이를 넘어 타자 및 타공동체와의 정체성 중첩을 통해, 즉 새롭고도 공통적인 국가·지역·세계시민 정체성의 창출을 통해 자아 및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범주를 넓혀갈 때 우린 비로소 자기로부터 타자, 국가, 그리고 세계로 나아가며 연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담이 막바지에 다다르니 오히려 더욱 어려워짐을 느낍니다. 평안하시길 빌며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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