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아시아경제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30911155658482>
[르포]'키르키즈스탄 선생님의 다문화 수업 다녀왔습니다'
지난 8일 서울 고척초등학교의 이중언어강사 이나직 선생님이 5학년 1반 아이들과 수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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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서울 고척초등학교(교장 박창식) 5학년 1반 교실. 키르키즈스탄에서 한국에 온 지 5년 남짓한 이나직 선생님의 첫 수업이 시작됐다.
조금 서툰 한국말로 자신의 이름을 말한 이 선생님이 자신의 조국 키르키즈스탄을 소개하고 화폐 실물을 보여주자 아이들의 관심이 선생님의 손과 입으로 쏠린다.
칠판 뒤에 숨어있던 대형 TV가 나타나고 수도 비쉬켄의 사진 속에 있는 커다란 건물을 가리키자 "청와대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눈치 빠른 정답이다. 키르키즈스탄의 대통령궁이다.
선생님과 친숙해진 아이들이 먼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면 밥은 손으로 먹어요, 젓가락으로 먹어요?" "스테이크를 많이 먹나요?" "숟가락과 포크로 먹지요. 주로 빵을 먹어요." 붉은색 국기를 보여주면서 한국 국기에는 '태극기'라는 이름이 있지만 키르키즈스탄은 그냥 '국기'라고 부른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처럼 수업은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를 연결짓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 선생님은 아이들과 게임을 하기도 했다. '나라이름 대기' 놀이다. '아이 엠 그라운드, 나라이름 대기' '중국' '일본' 1분단부터 한명씩이다. 중국, 일본, 미국… 익숙한 나라들이 먼저 나온다. 우즈베키스탄이 나오니까 아이들이 탄성을 지른다. 하지만 두 번째로 시작된 게임에서는 미얀마, 필리핀, 네팔과 같은 나라까지 속속 흘러나오며 25명이 수업받는 교실 한 바퀴를 다 돌았다.
◆ 외국인 100만명 시대 '이중언어 강사'로 대비 '= 이 선생님은 다문화 시대를 맞아 서울교대가 공들여 길러내 학교 현장으로 내보낸 '이중언어 강사'다.
김정원 서울교대 다문화교육연구원장은 "국내 체류 외국인이 100만명을 훌쩍넘어서면서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다문화ㆍ다인종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며 "서울교대는 초등학교를 비롯한 학교에서 다문화 교육이 가장 절실하다고 판단해 '이중언어 강사 양성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중언어 강사의 경우 지난 2009년 3월 90명을 선발해 8월 초까지 총 900시간 동안 교육을 마쳤다. 대졸 이상 학력인 이중언어 강사 72명이 배출됐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고국에서 교사 경력을 갖은 이들이다.
대부분 초등학교에 배치돼 주당 20시간 내외씩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다문화 수업을 통해 한국 아이들의 다문화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따로 상담하고 돌봐주는 일, 이중언어 강사로 일본어ㆍ중국어ㆍ러시아어 등 모국어를 방과후교실을 통해 가르친다.
현재 활동하는 60명 가량의 강사는 일본인과 중국인이 18명씩 내외로 가장 많다. 몽골(16명)과 러시아(12명), 동남아시아 국가(말레이시아, 필리핀) 출신 강사들이 뒤를 잇는다.
2008년 기준으로 초ㆍ중ㆍ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 가정 학생은 약 2만명. 이 숫자는 해마다 30~40%씩 늘어나고 있다. 펄벅 재단은 2029년이면 우리나라 신생아 3명 가운데 1명에 해당하는 167만명이 다문화 가정 자녀가 될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김 원장은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오지 않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60% 가량 된다"면서 "더 이른 나이에 다문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난해에는 유아 다문화 이해 강사 양성 사업을 통해 30명의 강사를 길러내 3월 초 유치원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서울교대에서는 학부 학생들에게는 2학점의 정규 교과 과정으로 '다문화 교육의 이해' 강좌를 개설했고, 대학 입학 직전에도 다문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현직 교사들에게는 다문화 교육 직무연수 등을 통해 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김 원장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자원일 수 있다"면서 '먼저 온 미래'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 선생님의 이야기 "내 딸이 더 당당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 사실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이다.
김 원장은 한 일본인 이중언어 강사는 처음 수업 들어간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독도는 우리 땅'을 되풀이해 부르게 하는 일을 겪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15년을 지낸 그 선생님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일이다.
수업에 함께 참여하기 이전인 지난 1일 따로 만나본 이나직 선생님은 딸 나영이를 함께 데려왔다.
이 선생님은 "결국 다문화교육을 통해 딸 나영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엄마는 키르키즈스탄에서 왔어요'라고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이를 어색해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아이들은 아직 단순해서 '얘는 중국사람이예요'와 같은 말을 아무런 고민없이 던진다"면서 "제가 '그러면 중국어도 배우고 중국도 갈 수 있겠네'라는 얘기만 해줘도 오히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이 선생님은 스마트 폰으로 만화영화를 보여줬다. 러시아어로 된 만화 '미샤와 곰'이었다. 이 선생님은 "5살인 나영이는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면서 "러시아어를 미리 공부해 두면 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일 민족 국가'를 외치던 민족 교육에 젖어있던 한국의 학교에서 외국인을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 사회로 변신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느 수준까지 도달한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8일 찾아간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이 쥐고 있었다. 40분 내내 딴 짓하지 않고 열심히 수업을 듣던 아이들은 외국인 선생님을 어색한 기색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김상홍 어린이는 "돈을 보여주고 여러 사진을 보여 준 수업이 재밌었고 선생님이 외국인이라 어색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최수혜 어린이는 "키르키즈스탄 돈 속의 얼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얘기했다. '선생님'으로 외국인을 겪은 것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아무래도 중요한 경험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길에서 외국인을 마주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